*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로, 세상에는 이와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이렇고, 아마 제 신상에 커다란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은 죽을 때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다르신 분은 ‘아, 이런 생각도 있군.’정도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들어주십시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플레이를 하다가 감정에 젖어 눈시울을 붉혀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기쁨에 가득 차서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짬이 날때면 지난번 플레이가 끝난 시점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고민을 하곤 합니까?
당신의 캐릭터가 당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제멋대로 행동한 적이 있습니까?
플레이 도중에 농담을 해도 그 말이 캐릭터의 대사로 나오곤 합니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당신이 ‘예’라고 대답하실 수 있다면, 당신은 멋진 팀에서 즐겁게 RPG를 해오셨다고 자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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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나는 RPG를 내 운명의 길에 놓여있는, 그러니까 내 일생의 일부라고 생각한다.-애초에 잠시 하다가 던져버릴만한 물건이라면, 그걸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한 명의 이야기꾼이었고, 연기자였으며, 동시에 관객이면서 비평가이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행복했다.
사실 내 캐릭터들을 주욱 살펴보면,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던 캐릭터들은 없었다.-물론 행복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백스가 우울한 것은 둘째치고, 제 몸을 겨우 추스릴 수 있을 정도의 모험자였던 주제에 타나리랑 싸움을 해서 죽었다든지, 왕자였던 주제에 악마랑 계약을 맺어서 부하를 궁지로 몰아넣고 국민들을 몰살시키기도 했고, 류트를 연주하는 악사였는데 한쪽 팔이 잘려나갔다든지, 개미 애벌레의 식사용으로 한쪽 다리를 바쳤다든지 하는 여러 가지 ‘괴로운’ 경험들을 많이 했다. 그래도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물론 당시에는 하나도 행복할 리가 없다. 나는 RPG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팔을 잘리고서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좋아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대체 왜 즐거운 걸까. 왜?
대부분의 사람이 ‘창조’라는 작업을 사랑한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프로그램을 짜거나...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인간을 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창조’라는 것은 사실 신의 작업이고, 인간은 그것을 하면서 희열에 빠진다. ‘보라! 나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만든 것이다. 나를 봐다오.’ 굳이 방금 말한 것들이 아니라도, 인간은 언제나 창조작업을 하고 있다. 어제까지도 할 수 없었던 턱걸이 10개를 했다든지, 도저히 엔딩을 볼 수 없었던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엔딩을 봤다든지 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스스로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인 것이다.
RPG는 그러한 기쁨을 준다. 마스터로서 NPC를 만들거나, 플레이어로서 캐릭터를 만들거나하는 일들은 모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방금 전까지도 존재하지 않던 인물들이 잠시잠깐의 생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짜거나, 던전을 제작하거나하는 일들도 이와 비슷하다. 글을 쓴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시나리오나 던젼의 제작 같은 일들이 평소에 하던 일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시나리오를 멋지게 해결하거나, 엔딩을 보거나하는 일들은 성취의 쾌감을 준다. 목표하던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기쁨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 것이다. 이런 수많은 일들이 모두 ‘창조’의 기쁨인 것이다. 좀 범위를 넓게 잡아버린 듯 하지만.^^a
우리들이 소설이나 영화 등을 보면서 그것에 빠져드는 것은, 그곳에는 우연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은 흥미로운 사건을 부르고, 그것에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우리는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그러한 사건들 속에 우리를 빠뜨린다. 우리는 실제로는 겪기 힘든-어느날 갑자기 영웅이 된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나, 백마탄 왕자님의 등장-, 또는 겪고싶지는 않지만 흥미롭게 보이는-엄청난 불행 속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 같은- 일들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그곳에서 채우는 것이다.
RPG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그래서 영웅적인’ 일을 그 주된 테마로 삼는 소설과 같은 맛이 있다. 설사 당신이 환타지시대에 사는 초보 모험자라고 쳐보자. 과연 당신에게 운명과도 같은 모험이 다가오고, 멋진 동료들이 생길까? 그 확률은 지금 내가 나가서 복권을 사서 최고금액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낮으면 낮았지 높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은 RPG에서 영웅이 되고, 멋진 모험을 한다.
물론, 별로 영웅의 분위기 같지 않은 나름대로의 ‘처절함’을 추구하는 플레이들도 있다.-레이븐로프트나, 콜 오브 크툴후 같은 것이 이 부류에 속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비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영웅이 아니지는 않다. 그들은 그 세상에서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운명과 싸움을 하고, 그것으로 충분히 영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들은 그 캐릭터에 스스로를 투영해 또 다른 세상에서의 우연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디어매체는 일방적인 전달을 하고 있다. 소설의 경우,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다. 영화의 경우, 감독은 찍고 시청자는 본다. 게임의 경우, 제작자는 만들고 게이머는 한다. 거기에 평가라든지, 해석 같은 수용자의 영역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완결된 형태이고 수용자의 활동 영역은 그것에 대한 양념조차 되기 힘들다.-최근에는 양방향 미디어라는 형태로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소설을 쓰는 방법’이라든지, ‘시청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등이 새롭게 등장하긴 했지만-
하지만 RPG는 다르다. 플레이어 자신이 하얀 종이 위에 직접 만든 캐릭터가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그 캐릭터의 행동의 결정은 언제나 플레이어가 하게 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 테트리스를 할 때 더 집중을 하는 것처럼 보통의 미디어와 RPG를 비교할 때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당연히 일반적인 미디어와는 수준이 다른 몰입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단순히 남이 만든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것도 RPG의 커다란 매력 중 하나다. 간혹 1:1 플레이-뭐, 1인 플레이라고 해도 결국은 플레이어 하나와 마스터 하나, 즉 두 명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혼자’라고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들은 2-5명 정도의 파티를 이루어서 다닌다. 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도감이 드는지는 모두 동감할 것이다. 게다가 캐릭터도 현실의 반영인지라 결코 만능일수는 없다. 잘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당연히 부족한 부분도 생기는데, 그걸 동료가 메꿔주는 것도-애초에 D&D나 AD&D는 그것을 룰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겁스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함께 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혼자라면 절대로 해결하지 못할 상황도, 동료가 있으면 쉽게 넘어가는 일이 종종 생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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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쓰면 좀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 나온것은 이런 어수선한 이야기다. 평소에 조금씩 생각하던 이야기인데 아직까지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해서 이런 모양새밖에 안되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 죄송스럽다.
아마도, 다들 스스로가 왜 RPG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두번씩 질문을 던져 보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RPG는 상당히 매니악한 취미다. 누가 말했듯이, 일주일에 한번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1/7을 RPG에 투자한다고 할 수 있다. 돈이 적게드는것도 아니고, 시간이 덜드는것도 아니며, 대중적인 취미활동도 아니다. 실제로 본인은 학교에서 다이스를 굴리다가 ‘도박’취급을 받은적도 제법 있다.--a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말한 이유들을 들어 나는 감히 RPG가 사랑스럽고, 그것을 하고 있는 동안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제 곧 나라의 부르심을 받아서 저 머나먼 군다이 차원으로 사라질 운명이지만, 돌아오면 다시 또 불타오를거다. 그 속에서 웃고, 울고, 또 고민하면서. RPG는 나의 꿈 중 하나고, 또한 생활이다.
<이를 이해하는 자에게는 오로지 RPG만이 있고, 또한 오로지 RPG만을 생각하니 그에게는 모든 것이 곧 RPG이다. 그는 일거수일투족에서 RPG을 드러내며 어느곳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의 모든 것이 RPG로 향하는 것이다.> - Ray N.Bel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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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컨벤션에 'Traveler In Time'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하면서 냈던 회지의 일부분이다. 결국 군대는 가지 않았고(입대 예정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니, 실제로 쓴 것은 2000년 하반기인듯),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나도 많이 변했다. 생각이 깊어지고 문장이 나아졌을(지도 모르는) 지금에도 저것보다 나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무엇을 잘 하는데는, 기술보다는 마음이 더 필요하니까.
++신학자의 글을 가져오다니, 2000년의 나는 RPG학자라도 할 참이었나?!orz
# by Ranbel | 2005/08/18 0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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