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타쿠입니까?>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 글을 보는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까? 나는 슬프게도 머뭇거리다 제대로 된 대답을 못했다. 게임회사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을거라고는 생각을 못해봤던지라, 그야말로 허를 찔렸다.orz 게임 회사에서 사원이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등에 과도한(!) 애정을 가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고, 어떤 회사는 입사 지원시에 '가장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기입하는 항목이 따로 있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질문이 나올리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아니면 좋겠다'라는 뉘앙스로 말이다.(물론 그 회사는 게임치고는 좀 독특한 쪽이긴 했다.)
그리고 그 면접으로부터 일주일이 넘게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내가 오타쿠인지에 대해서 딱히 대답을 못하겠다. 물론 이쪽 계열(지칭하기가 좀 어렵다. 굳이 표현을 바꾸자면, 게임 좀 하고 만화/애니 좀 본 사람들)사람들의 기준으로는 난 절대 오타쿠가 아닐거다. 내가 오타쿠라고 하면 사람들이 비웃겠지.-_-; 그리고 나도 이쪽 계열의 사람들과 놀고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오타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헛 저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란벨은 당연히 오타쿠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거 같다는게 좀 슬프지만. 그래도 아닌걸 뭐 어째.(으쓱)
기본적으로 특정 코드나 특정 작품에 열중하지도 않고, 전편을 다 찾아본 애니는 손으로 꼽고, 한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을 주연 말고는 대부분 헷갈리고, 한 시리즈를 3편 이상 한 게임은 FF가 유일하고, 세미정장이 입고 싶어서 살을 빼거나(드디어 헬스의 진짜 목적이 폭로ㅠ_ㅠ), 개그프로나 한국드라마, 리얼리티쇼를 짬날 때마다 보는 사람(*1)이 오타쿠일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정말로 평범한 일반인들을 기준으로 하면 어떨까? 하루 8시간정도를 컴퓨터에 붙어 지내고, 매달 읽는 만화책이 20~30권을 넘는데다, 인생에 영향을 준 작품 중 하나로 일본 애니메이션(*2)을 꼽고, 자기는 영화나 드라마쪽은 가기 싫다고, 꼭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남자.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반인의 관점에선 절대 평범해 보일리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타쿠일까? 아닐까? 그럼 당신은? 개인적으로는 오타쿠와 비(非) 오타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구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타쿠라고 해도, 혹은 아니라고 해도 사회도 내 주변도 하나도 바뀌지 않을게 뻔하다. 어쨌든 나는 나이고, 오타쿠도 비(非)오타쿠도 마찬가지로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스스로가 오타쿠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니까. 너와 나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니까.
나는 경계선을 넘어다니는 것이 즐겁다. 순수문학과 트렌디 드라마, 혁명적인 영화, 잘 팔리는 소년만화, 독특한 시스템의 게임들은 모두 다른 방향에서 오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어느것도 그냥 버리기에는 아쉬운 물건이다. 당신이 저런 다양한 즐거움 중 무언가를 버리고 있다면, 한번쯤 추천작들이라도 살펴보면 어떨까? 나는 뭔가 좀 더 열중해서 해봐야겠다.
*1: 재미있는 것은 난 이것들도 그다지 열심히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일반인'들이 어디에서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끼는지 알기 위해서 보기 시작했던 것이고, 근래에 들어서는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트랜드를 살펴보는건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것만큼 재미있더라.
*2: 에반게리온 이야기다. 그리고 난 놀랍게도 에바 전편을 한번밖에 못 봤다. 난 정말 대단한거 같아(아련)